* 구속받지 않는 사람에게는 중심이 있다-인간에게는 중심이 있어야 한다. ‘중심을 잡으라’는 말이 선뜻 잡히지 않을 수 있지만 <중용>을 통해 그 의미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중용>에 실려있는 ‘중’은 ‘희로애락’의 감정이 아직 생겨나지 않은 것‘으로 천하의 근본’을 가리킨다. 즉 그 무엇에도 침해받지 않은 고요하고 평온한 마음으로 세상의 근본 도리를 지키는 것이다. 세상의 근본 도리는 ‘지나침도 미치지 않음도 없고,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가장 적절하고 조화로운 상태’를 말한다. 곧 ‘중용’이 뜻하는 바다.
바르지 않는 길 앞에서 멈출 줄 아는 사람이 바른 길을 갈 수 있다.
* 어른이라면 자신의 마음을 하나로 모을 수 있어야 한다-누군가를 믿기 위해서는 자신부터 믿을 수 있어야 한다. 하늘의 뜻을 얻기 위해 가져야 할 또 한 가지는 이루고자 하는 일이 반드시 의에 기반을 두고 있어야 한다. 하늘이 함께한다는 마음가짐은 급박한 때는 물론 평상시의 생활에서도 큰 힘이 된다. 우리가 두려워 하는 것은 오직 하늘 뿐이다.
* 당당함은 스스로에 대한 엄격함에서 나온다- 다산은 홀로 있을 때 신중히 하라는 것을 단순한 장소의 개념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혼자 있을 때 단정히 하는 것은 마음공부를 하는 사람으로서 당연한 것이고, 오히려 사람들과 교제하면서 다른 사람이 모른다고 해서 해를 끼치고 악을 행했던 일은 없는지 혼자 있을 때 돌이켜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신독이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단정함을 유지하는 태도가 아니다. 어제보다 오늘, 조금 더 단단해진 나를 만들어 가려는 간절함이다.
* 비범함은 무수한 평범함이 쌓인 결과다- 성실,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견고함
평상시에 말의 신실함과 행동의 신중함을 지키는 자세는 바로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을 조심스럽게 하는 태도다. 평상시의 행동뿐 아니라 마음이 조급할 때나, 감정이 격동했을 때나, 좋을 때나 싫을 때, 유혹 앞에서 흔들릴 때를 모두 망라한다.
용은 갑자기 나타나지 않는다. 일상을 돌아보며 노력했던 소소한 과정이 쌓인 끝에 태어나는 것이다.
* 사자는 갈기가 없더라도 사자다- 내면이 곧아진다는 것은 마음이 올바르고 단단히 뿌리내림으로써 어떤 일에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상태를 의미한다. 의로써 겉을 반듯하게 하는 것은 밖에 있는 의를 가지고 바깥을 꾸민다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 있는 의가 밖으로 드러나 자연스럽게 외양이 바르게 표현되는 것이다. 열심히 노력해서 의식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내면이 곧게 섬으로써 그 충실함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사람, 크고 대단한 일을 해서가 아니라 일상의 삶에서 품격이 있는 사람, 무심한 듯,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하지만 돌이켜보면 한치의 어긋남도 없는 사람, 바로 이런 사람이 진정한 어른이다.
어른이란 사소한 것에서부터 상식에 어긋나지 않게 행동하는 사람이다.
* 마음이 흔들렸다면 잠시 멈추고 스스로를 정리하라-덜어냄은 과도한 것을 덜어내어 중도를 취하는 것이다. 덜어낼 때에는 반드시 믿음과 진실에 기반을 두고 합당한 이치를 따라야 한다. 그래야 중도를 취할 수 있고 크게 길하게 된다. 당연히 계속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만약 덜어내는 데 지나치거나 어긋남이 있으면 올바른 것이 아니다. 믿음이 생길 수 없기에 당연히 길할 수가 없고 멈춰야 한다. 무엇을 원하든 생각할 수 있어야 얻을 수 있다. 그 시작은 멈추는 것이다. 분노와 욕심을 가라앉히는 것도 마찬가지다. 고요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생각할 수 있으면, ‘화’라는 감정과 ‘탐욕’이라는 유혹에 휩쓸려 있는 자신이 부끄러워질 것이다.
인간은 격정에 휘말릴 때가 아니라 잠시 멈췄을 때 오히려 스스로의 존재감을 똑똑하게 느낄 수 있다.
* 매일 스스로를 허물어 거듭 시작하라-타인의 허물을 보면 스스로의 빈 것을 점검하라. 정자는 “좋은 것을 보았을 때 그쪽으로 바뀌어 갈 수 있으면 천하의 좋은 것을 다 할 수 있고, 허물이 있을 때 그것을 고칠 수 있으면 허물은 없게 된다.
* 스스로를 존중하는 것은 스스로를 아는데서 나온다- 스스로를 안다는 것은 자신의 현실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다. 자기의 모자라는 점을 인정 할 수 있는 것이 겸손이다. 터무니없이 자신을 높이는 자존심이 아니라 자신을 정확히 알고 부족한 점을 채워 나갈때 하루하루 변화하는 자신을 만들 수 있다.
* 어른이란 스스로를 대하듯 타인을 헤아리는 마음이다.- 공자는 ‘자신에게 대해서는 엄중하고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너그럽게 한다면 원망을 받을 일이 없다’고 했다. 공감과 배려라는 높은 차원을 제쳐두더라도 지금 최소한 상대방을 나와 동등하게 생각하고 공정하게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 공자의 마지막까지 끊어내고 한 했던 4가지
1. 무의(無義)‘사사로운 뜻이 없다’ 공명정대함이며, 내 멋대로 생각해서 편견에 사로잡히거나 억측을 없애는 일이다.
2. 무필- 기필코 해야하겠다. 생각으로 순리에 벗어난 일을 하지 않는다. 억지를 부리지 않는 일이다.
3. 무고- 신념이나 원칙에 집착하지 않고 유연하게 상황에 대처하고자 하는 태도
4. 무아- 모든 일들을 자신의 물적, 정신적 이익을 위해서 취하지 않는 일
* 진심, 내가 먼저 주어야 받을 수 있는 것- 동양 철학의 핵심인 ‘서’는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된다. 역지사지 ‘내 처지로 이루어 다른 사람을 생각한다. 지도자가 권위와 강압이 아니라 앞장서서 바른길을 걸을 때 사람들은 충성과 진심으로 그 길을 따른다. 마음이란 구걸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먼저 타인에게 마음을 다했을 때 비로소 남의 마음을 물을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 주변에 휩쓸리지 말고 나다운 나를 지켜라- 중용에는 ‘하늘이 명한 것을 본성이라 하고 본성을 따르는 것을 도라고 하며, 도를 닦는 것을 가르침이라 한다’가 일러주는 이치다. 초연함이란 무덤덤해지는 것이 아니라 치우치지 않는 중심을 배워나가는 것이다.
* 자신을 믿지 못하면 쉽게 분노하게 된다- 감정 가운데 가장 다스리기 어렵고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줄 수 있는 감정은 분노다.
근심과 슬픔도 다른 사람에게 감정적 악영향을 줄 수 있지만 분노는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히게 된다.
* 있는 그대로는 받아들이되 물들거나 흔들리지 마라-분노와 원망, 무서움과 두려움, 좋음과 기쁨, 근심과 걱정, 이 네 가지는 희로애락이 발현된 것이니 마음의 쓰임이다. 따라서 사람에게는 없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희로애락을 미워하면서 그 바름을 얻지 못하겠다고 하는가? 무릇 화를 내야 하면 화를 내되 그 화를 다른 사람에게 옮기지 말아야 하고, 두려우면 두려워하되 지나치게 겁을 내어서는 안 되며, 좋으면 좋아하되 지나친 욕심이 되어서는 안 되고 근심할 만하면 근심하되 마음이 상할 정도로 해서는 안된다. 이렇게 햐야 마음의 본체와 그 스임이 바르게 되는 것이다. 기뻐하고 화를 내고 근심하고 두려워하는 바가 없어서 모든 것이 없어지는 경지가 되는 것도 진실로 마음의 올바른 본체가 아니고, 기뻐하고 화내고 근시맣고 두려워하는 바가 있어서 무언가에 붙들려 잡히는 잘못도 마음의 올바른 쓰임이 아니다. 오로지 일이 이르게 되면 그에 맞게 응하고 떠나가면 미련을 남기지 않는 것, 이것이 바름이다.
주변을 바꾸고 싶다면 자신부터 바꿔야 한다. 스스로를 바꾸고 싶다면 마음부터 지켜야 한다.
감성이란 축적된 지식에서 우러나오는 것이 아니다. 타인을 마치 자신처럼 이해하고 받아들이고자 하는 노력이 쌓여 몸에 새겨져야 느낄 수 있는 능력이다.
*지키고 싶다면 벽을세우지말고 속을 채워라- 군자가 스스로를 기르는 것은 다름 아니라 안과 밖이 서로 공부를 다할 따름이다. 간사한 소리와 어지러운 색을 총명에 남겨두지 않는 것은 그 밖을 기르는 것이고, 음란한 음악과 사특한 예를 마음에 접하지 않는 것은 안을 기르는 것이다.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해야 할 행동은 바로 나쁜 것들이 마음을 차지하지 않도록 지키는 것이다. 게으르고 교만하며 간사하고 편벽된 기운을 신체에 베풀지 않겠다는 의지와 몸과 마음을 다해 올바른 길을 가겠다는 결의가 의로운 길로 이끈다.
나를 지킨다는 것은 외부의 모든 자극을 막고자 스스로를 비우는 고립이 아니다. 내부를 좋은 것으로 채워나가는 것이다.
* 어른으로 사는데도 자격이 필요하다- 논어에
군자는 평온하고 너그럽지만, 소인은 늘 근심하고 두려워한다.
군자는 덕을 생각하지만 소인은 편히 머물 곳을 생각하고, 군자는 법을 생각하지만 소인은 혜택 받는 것만 생각한다.
군자는 의리에 밝고 소인은 이익에 밝다
군자는 조화를 이루지만 당파를 이루지는 않고, 소인은 당파를 이루지만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 습관을 바꾸기 위해서는 칼로 베는 단호함이 필요하다- 사람이 도를 추구하는 것도 욕망을 따르는 것도 모두 즐거움 때문이다. 도를 이루기 위해 예와 의를 수양하는 것은 단시간에 끝날 수 없고 평생을 연마해도 도달할 수 없을지 모른다. 우리는 욕망에 이끌리는 스스로를 인정하되. 그것이 바른 길인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아닌지를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따라서는 안 되는 것이라면 습관이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습관이 오래되면 천성이 되기 때문이다.
욕망과 타협을 반복하면 습관이 된다. 습관이 오래 되면 천성d l된다. 따라서 스스로 변화를 원한다면 어제까지의 습관을 오늘부터 단절해야 한다.
* 사랑이 곧 사람이다- 불쌍한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라 할 수 없고,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악을 미워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라고 할 수 없고, 사양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라고 할 수 없고, 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맹자는 본성과 감정을 통과하는 것을 마음이라고 밝혔다. 우리는 하늘로부터 받은 마음은 선한 것이며 그 중에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사랑임을 새길 수 있다. 사랑으로부터 정의로운 삶, 배려하는 삶, 공부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맹자는 이렇게 말했다. “사랑은 곧 사람이다. 사람과 사랑이 합해지면 그것이 바로 도다”
* 마음이 바뀌면 모든 것이 바뀐다-우리의 본성을 살펴보면, 선을 즐거워하고 악을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바로 본성에서 생겨난다. 본성에 따르면 인에 머무를 수 있고 의에 말미암을 수 있으므로 덕성이라고 이름 지은 것이다. 우리는 다행히 하늘로부터 착한 본성을 선물받았다. ‘선을 좋아하고 악을 미워하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본성’을 따를 수 있다면 평안한 마음으로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데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나의 마음이 바뀌면 모든 것이 바뀐다. 모든 것의 시작은 결국 나 자신의 마음에서부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