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할 수 없는 상황 때문에 무기력감이 왔을 때는 뭐든 더 자극적인 것을 찾게 된다. 영화를 보더라도 스릴러나 재난영화를 찾아보고, 매운 음식에 캡사이신 소스를 뿌려 더 맵게 해서 먹거나 술을 마신다. 나를 편안하게 해 주는 사람과 함께하기보다는 나를 더 힘들게 하는 사람에게 매몰되기도 한다. 그럴 때는 무엇에도 집중하기가 어렵고 좋아하는 음악을 듣거나 가만히 책을 읽는 시간 같은 일상의 잔잔한 기쁨이 현저히 줄어든다. 그래서 한동안 무기력감이 머물다 걷혀갈 때쯤에는 단순히 샤워를 하는 정도의 신체 감각조차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무기력감을 오래 느끼면 몸과 마음이 지쳐서 일상생활을 하는 정도의 주변 자극만으로도 피로와 스트레스가 증가한다. 그렇게 되면 감정이나 감각을 느끼는 데에 쓸 에너지가 줄어드니 기쁨이나 행복의 감각 또한 무뎌지게 된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상황들은 대체로 부정적이거나 자극이 강한 일들이다. 그 때문에 무기력할수록 원인이 되는 바로 그 상황에 자꾸 몰입하게 된다. 아이러니한 점은 거기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조차 부정적인 에너지를 재생산해 내는 격이 되어 애쓸수록 더 무기력해지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는 것.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의 저자인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는 대학에서 인지과학개론 강의를 할 때 학생들에게 ‘코끼리를 생각하지 않는 것’을 과제로 냈다. 하지만 그 과제에 성공한 학생은 한 명도 보지 못했다고 한다. 우리는 어떤 단어를 들으면 뇌 안에서 자동으로 그에 상응하는 프레임을 활성화하게 된다. 심지어 그 단어를 부정하는 프레임이라도 말이다. 아이들에게 어떤 행동을 제한시키고 싶다면 무조건 참게 하는 것보다 다른 더 흥미로운 것으로 관심을 전환시키는 게 훨씬 쉽다. 어른도 크게 다를 게 없다. 할 일이 있어서 인터넷 검색창을 켰는데 의식의 흐름대로 이것저것 흥미로운 것들을 클릭하다가 본래 하려던 일을 까맣게 잊어버린 적이 있는가.
이것을 한 번 역이용해 보자.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괴로울 때는 그 상황에서 벗어나는 것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현재 내가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즐거운 일에 에너지를 돌려 보는 것이다. 이렇게 긍정적 경험을 통해 무뎌진 감각을 먼저 깨우고 나면 마음의 에너지 수준을 서서히 높일 수 있고 그 힘으로 문제 상황을 해결해 나갈 수 있게 된다. 코끼리가 자꾸 떠올라 힘들다면 한 템포 쉬고 코끼리와 재밌게 놀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는 게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