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고통의 지층들
* 아파보니 알겠더라 내가 어떤 사람인지- 고통은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 고통은 사람을 실존적 존재로 만든다. 정확하게 말한다면 고통은 사람이 실존적 존재가 되는 것을 불가능하게 함으로써 더욱더 실존적 위기의 상황으로 몰아간다. 사람은 고통을 통해 자기 자신과 만나기도 하지만 고통에 의해 자신과의 대면이 불가능해지기도 한다.
* 사람은 언어를 통해 타자와 함께 거할 수 있는 집을 짓는다 .집은 홀로 머물 때 조차 나와 함께 머문다. 타자 혹은 나와 함께 머물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언어이다. 언어를 통하지 않고서는 한곳에 있더라도 함께 머무는 게 아니라 제각각 머무르는 고립된 둘이 있는 것이다. 언어를 통해서만 홀로 머물 때조차 함께 머물 수 있으며, 그럴 때 우리는 비로소 거주하는 집이 있는 존재가 된다.
* 고통은 내게 곁은 내어준 이들마저 온전히 내버려두질 않았다. 고통은 명료하게 말할 순 없다. 그러나 그에 맞서 싸우는 과정은 말 할 수 있다. 고통이 가져온 외로움, 그 외로움이 통한다.
* 고통의 가장 큰 특징은 겪는 이에게 절대적이라는 점이다. 주변에서 아무리 당신의 고통이 다른 사람의 것과 비교했을 때 견딜만한 것이고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해도, 이 말은 고통을 겪는 이에게 들어오지 않는다. 고통의 절대성이 만드는 외로움에 대해, 그 외로움을 마주 대하고 넘어서려고 했던 자신에 대해서는 말할 수 있다. 외로움이 세계를 파괴하고 사람을 고립시켰지만, 바로 그 외로움이 보편적이라는 것을 깨달음으로써 외로움은 통하게 된다.
* 먼저 깨달은 자만 그런것이 아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사람에게도 같은 일이 일어난다. 내가 외롭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사람은 소리를 지르는 것을 넘어서 비로소 말을 하게 된다. 내 '소리'를 말로 들을 줄 아는 사람이 있을 때 사람은 '그'에게 말을 한다. 그가 내 말을 들어줄 것이라는 '기대'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기대가 있을 때 말하는사람은 그가 '응답'할 스 있는 말을 하려고 한다 .응답을 요청하기에 응답 가능한 말을 하려고 하는 것이다. 응답을 요청하나는 것은 응답하려는 상대를 인식하는 것이다. 고통으로 파괴된 세계가 재건되는 시작점이다. 세계는 이처럼 어떻게 해서든 말을 통해서만 재건될 수 있다.
제2부 고통의 사회학
* 고통에 대한 언급을 금기시하던 사회에 왜 갑자기 고통에 대한 이야기가 넘쳐 흐르게 되었는가, 고통에 대한 이야기가 주류가 되면서 어떻게 신중한 이야기가 공론의 장에서 밀려나고 그 자리를 납작한 언어가 차지하게 되었는가, 그리하여 결국 고통을 납작하게 만들었는가 말이다.
* 사람이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존재감'이 필요하다. 내가 존재할 가치와 의미가있다고 느낄 때 삶은 비로소 살아갈 만한 것이 된다. 존재감에서의 핵심은 내가 쓸모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세상 모두가 부정하더라도 자기 자신이 스스로에 대해 쓸모있는 존재라고 생각할 때 자기가 가치 있다고 여기게 된다.
*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고통이 '포르노'처럼 전시되기 시작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사회적 영역에서 존재감을 가지기 힘들어졌기에 그 고통을 호소하는 이야기가 사회적으로 터져 나오고 반향되기 시작햇다. 사회적 영역에서 고통을 호소하는 것이 나약한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겪는 이야기로 여겨지면서 사횢거 관심사가 되고 주목을 끌게 되었다. 해결해야 하는 시급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 인간을 혐오하기에 인간을 발가벗기고 그 존엄을 파괴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혐오하는 대상에게 지켜야 할 예의는 없다. 멈추어야 할 선도 없다. 인간은 그렇게 존엄하게 보호받아야 할 가치가 없다. 고통의 당사자들이 펼치는 참혹함을 보면서 인간을 혐오하지 않을 방법은 없기때문이다 .자기 자신과 인간에 대한 연민을 보호하기 위해 이들이 택한 것은 '사라지는 것'이다.
제3부 고통의 윤리학
* 고통을 겪는 이가 경험하는 것은 절망이다. 자기 몸에서 분명히 느끼고 있는 그 고통을 말할 수 없다는 것은 깊은 좌절과 절망에 빠뜨린다. 자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람들은 주문을 외우며 '고통은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을 외면하려고 한다. '다 필요 없다'고 소리치기도 한다.
* 고통받는 이들의 곁이 되어준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겪어야 했던 또 다른 고통이 있다. 말을 한다는 것은 상대를 내 말을 듣는 '그'로 여긴다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이가 듣는 이를 다른 누구도 아닌 그 사람으로 여길때 사람은 듣는 것만으로도 존재감을 느낄 수 있다. 그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에게 말을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듣는 사람이 될 때 사람은 말을 할때보다 더 스스로를 대체 불가능한 존재로 느끼며 자존감의 고양을 경험할 수 있다 .이것이 듣는 이를 이끌게 하고 듣는 것을 지속시킬 수 있다.
* 고통의 곁에도 곁이 필요하다. 고통의 곁에 있는 이에게 절망은 고통을 겪는 이가 그 절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곁에 서 있는 자신을 끝끝내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언젠가 절망에서 벗어나 곁에 있는 자신의 얼굴을 보고 힘을 내며 응답할 것이라는 희망이 무너지는 것이다.
* 고통의 곁에는 말하고 듣는 힘이 남아있다. 그렇기에 고통의 곁과 그 곁 사이에서는 이야기가 이어지고 만들어진다. 곁에 서 있는 사람의 말에 다른 사람의 말이 보태지고, 그 말에 또 곁에 선 이의 응답이 이어지면서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 고통은 동행을 모른다 .동행은 그 곁을 지키는 이의 곁에서 이뤄진다. 그러므로 고통을 겪는 이가 자기 고통의 곁에 서게 될 때 비로소 그 곁에 선 이의 위치는 고통의 곁의 곁이 된다. 이렇게 고통의 곁을 지킨 이의 가장 큰 기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