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필자에게 이런 어려움을 토로하는 사회복지사 혹은 상담사들이 있다. 자신이 맡은 청소년이나 노인분들이 심성이 착하다는 것은 의심치 않지만 말과 행동이 너무 거칠어 대화가 힘들다는 것이다. 그래서 공격적이고 난폭한 언행을 어떻게 줄일 수 있는지를 자주 묻는다. 그러면 필자는 다소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엉뚱한 대답을 하곤 한다. '말을 느리게 하세요. 그럼 상대방 말도 대부분 느려지고 그럼 문제가 개선될 가능성이 커집니다.' 다소 성의 없어 보이기까지 하는 이 대답을 받은 상담사 상당수에게 일정 시간이 지난 뒤 감사의 이메일이나 문자를 자주 받는다. 정말이지 신기할 정도로 효과가 있었다고 말이다. 인간의 모든 거친 언행은 빠른 속도와 직결돼 발생한다는 아주 단순한 사실을 깨닫게 해줘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학생들에게 재미있는 실험 하나를 해보게 했다. 사실 실험이라 하기도 좀 그런 간단한 행동이다. 비어나 속어 혹은 심지어 욕을 아주 천천히 말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 학생들은 이내 웃음을 터뜨리며 손사래를 친다.
그리고는 이렇게 반응한다. '교수님, 욕설을 천천히 말하려고 하니까 너무 어색한데요?'라고 말이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
인간의 뇌는 기본적으로 공격적인 언행을 빠른 속도와 연결시켜 작동하게 한다. 사냥과 전투 모두 스피드가 생명이기 때문이다. 이는 수십만 년 전부터 이어져온 진화적 산물이다. 반면 포용적이고 너그러운 언행은 상대적으로 훨씬 더 느린 속도와 연결돼 있다.
이런 생각의 DNA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래서 우리가 실생활에서 누군가와 싸울 때 흥분된 감정이 더해질수록 말의 거칠어짐과 빨라짐이 동전의 앞뒷면처럼 결부돼 나타난다. 재미있는 것은 강제적으로 언행을 느리게 하게 만드는 것만으로도 공격적이고 거친 말을 하는 것이 어색해지며 완화되는 현상이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무언가를 천천히 하게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이겠는가. 바로 시간에 대한 관점을 조절해주는 것이다.
속도와 가장 관련성 높은 물리적 차원이 시간이기 때문이다. 자동차 속도를 표현할 때도 '시속(時速)'이라 하여 시간당 가는 거리로 표현하지 않는가.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시간에 대한 관점을 조절하면 속도를 조절하게 할 수 있고, 그렇게 이차적으로 조절된 속도로 인해 사람들은 더 우호적으로 혹은 공격적으로 변할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필자가 실제로 민간 기업이든 공적 조직이든 다양한 현장에서 실무자들을 대상으로 강연이나 세미나를 할 때 직접 연출하는 간단한 실험이다. 어떤 특정 인물에 관한 서류를 사람들에게 읽게 한다(일반적으로 10분 정도면 검토를 마칠 수 있는 분량의 서류다).
한쪽 그룹에는 '시간이 20분밖에 없습니다'라고 말해준다. 다른 한쪽 그룹에는 '20분이라는 충분한 시간이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양쪽 모두에게 서류 속 인물을 평가해 달라고 부탁한다. 시간이 얼마 없다고 생각하는 전자 그룹에 속한 사람들은 빠르게 서류를 본다.
대부분 남는 시간에 한두 번 더 검토한다. 충분한 시간이 있다고 생각하는 후자 그룹 사람들은 서류를 천천히 넘겨가며 신중하게 본다. 그래서 대부분 20분을 한 번의 검토 시간으로 사용한다.
흥미로운 점은 후자에 비해 전자의 평가가 대부분 더 부정적이고 인색하며 심지어 공격적이기까지 한 것이다. 실제 이 실습에 참가한 사람들도 매우 신기해하며 놀라지만 심리학적으로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는 현상이다. 인류 자체가 빠른 속도로 욕하며 갈등하고, 느린 속도로 친밀감 있는 말과 판단을 해 온 존재이니 말이다.
그러니 조직 내에 갈등이나 구성원 간에 공격적 언행이 증가하고 있으면 리더의 역할이 무엇이겠는가. '우리에게 충분한 시간이 있다'는 암시를 제공함으로써 속도를 완화해 더 우호적이고 포용적인 언행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그저 '싸우지 말라'는 훈계나 '화합하라'는 지시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이미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김경일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