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적당히 불완전하고, 적당히 완전하다
<애정 결핍과 의존성>에 관한 임상심리학자의 이야기
애써 자신의 모습을 바닥까지 전부 내보이고, 심지어 ‘바닥까지 다 보이고’ 타인에게 수용되고 인정받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잘 생각해 봅시다. 당신의 어머니는 당신의 모든 것을 전부 다 사랑했나요? 어머니조차도 당신의 모든 점을 수용하지는 못합니다. 구석구석 미운 점이 한두 개가 아닐 것입니다.(제 경우도 별다를 것 없습니다…)
타인이 ‘나’라는 존재를 무조건 인정해줘야 한다는 생각은 우울하고 불안한 사람들이 흔히 갖는 잘못된 신념입니다. 자신의 부정적인 면을 사람들에게 모두 내보이면서 ‘이래도 나를 사랑할 거야? 이래도?’하며 그를 시험에 들게 하는 것은 자신을 사랑하는 방식도 아니고, 타인을 사랑하는 방식은 더욱 아닙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어떤 성과도 얻을 수 없는 잘못된 奇癖일 뿐입 니다.
실은 당신도 당신 자신의 모든 면이 다 사랑스러운 것은 아니어서 자꾸만 타인에게 온갖 모습을 내보여 그들이 당신을 안심시켜주기를 기대하는 것이지요.
본래 가장 이상적인 양육은 적절히 관여하고 적절히 민감하고 적절히 반응적이어야 하는데, 대부분의 주 양육자들이 보이는 돌봄 패턴은 상당히 미숙하고 일관되지도 않아서 예측이 불가능합니다.
이 때문에 애착관계에서 불안감이 드리워지면 절대로 변하지 않는 사랑을 병리적으로 갈망하게 됩니다. 서로 조금씩 상처받고 상처주면서 굳은살이 생기듯 나날이 단단해지는 애착관계가 아니라 처음부터 자신을 완전하게 만들어 줄 영혼의 구원자가 세상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는 판타지를 마음에 품게 됩니다.
그러면 의미있는 대상이 얼마쯤 시간이 지나 내게 심드렁한 태도를 보이거나 그 사람이 나로부터 멀어져서 독립성을 보일라치면 그때부터 ‘너도 나를 버릴 거지?’, ‘제발 나를 안심시켜줘!’라 말하면서 절박하게 애정 결핍을 호소합니다.
그 다음부터 전형적인 비극의 장면이 이어집니다. 자신의 일상들로 이미 지쳐있는 주위 사람들이 어느 순간 정말로 거리를 두기 시작하면 ‘그것 봐!’ 하며 자기비하에 빠지고, ‘내가 지금까지 어떻게 해 왔는데 이렇게 부당한 대우를 받다니’ 하며 급작스러운 분노에 휩싸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삶의 모든 과정에서 타인의 인정을 구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 일이 불가능한 것은 차치하고, 애당초 그럴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어차피 서로의 기억은 엇갈리고 서로에 대한 평가는 각자의 마음 안에서 시시각각 바뀝니다. 어느 날은 친구와 말이 잘 통할 때도 있고, 어느 날은 조금 낯설 때가 있듯이 말입니다.
물론 많은 인간관계 문제는 실제로 개인의 불안정 애착에서 기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문가들이 거듭해서 말하는 것처럼 실제로 어떤 애착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는가 보다는, 당시를 어떤 애착관계로 규정하고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이 관계에서 가족을 비롯한 주위 사람들이 진심을 다해서 당신에게 사과한다면 좋겠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스스로 예전 상황에 대해 일관되고 성숙한 태도를 재구성하고 수용하는 것을 통해 안정 애착으로 들어설 수 있습니다.
주의할 것은, 과거의 애착관계를 다시금 돌아보고 통합하려 할 때, 수치심이나 죄책감 같은 부정적 자의식 정서가 개입할 여지를 두면 안 된다는 점입니다.
당신이 사랑받지 못할 존재여서가 아니고,
당신이 어딘가 결함이 있는 존재여서도 아니고,
당신이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존재인 것도 아닙니다.
그냥, 운이 좀 좋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말해 봅시다.
“그때는 그랬고, 지금은 다르다.
그때의 나는 취약했지만,
지금의 나는 타인과 안정적인 관계를 맺어도 충분할만큼
적당히 불완전하고, 적당히 완전하다.
그리고 어쩌면 예전의 그들은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나는 현재의 나와 나의 사람들을 지키겠다.”
그런 생각과 태도가 마음 깊이 스며들 때까지 임상심리 전문가나 정신과 전문의를 만나 재양육reparenting 관계를 맺거나, 베개 같고 이불 같은 무던하고 안정적인 사람과 재양육 관계를 맺거나 혹은 내가 나 자신을 재양육할 필요가 있습니다.
UCLA대학 정신건강의학과 임상교수 댄 시겔은 이렇게 애착관계를 재형성하면서 뇌가 재배선rewire the brain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니 그렇다고 치고, 한번 해 보세요.
이제 당신이 당신의 양육자입니다.
이제는 타인에게 사랑받기 위해 반응하기를 그만두세요. 부서진 마음을 위로하는 시간들이 차곡차곡 쌓을 수 있도록 당신의 마음을 다하세요.
세상에서 내가 제일 중요하고, 세상에서 내가 나를 가장 잘 압니다.
타인에게 사랑을 시험하려고 하거나, 그를 통해 당신을 채우려고 하지 말아요. 누군가 당신 곁에 있으면 좋겠지만, 또 아니면 마는 겁니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차츰 자기 자신과 안정 애착을 하면 됩니다.
과장되고 기만적인 표현들로 자신을 속이고, 어쩌면 틀렸을지 모르는 연애를 시작하고, 답이라곤 하나도 없는 만남을 지속할 필요가 없습니다.
타인에 대한 의존성을 더 짙고, 더 깊고, 더 크게 만들기보다 지금까지의 생을 버텼던 스스로를 기특하다 축하해 주고 스스로를 안전하고 따뜻하게 품어주세요.
맛있는 음식이 먹고 싶다면 내가 내게 맛있는 것을 사 먹이세요.
마음이 따뜻해지고 싶다면 향초를 켜고 깨끗한 담요를 두르고, 따끈한 차를 마시고, 따스한 노래를 틀어 자신을 돌보고, 그러면서 자신과 타인에게 사랑스러운 말을 건네세요.
연구를 통해 행복감에 대한 효과들이 입증된 방법들을 두루 활용해 보면서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것을 찾아보세요.
마지막 잔소리를 덧붙이자면, 인간관계에서의 기억은 서로 다르게 적힙니다. 그러니 불안으로 인해 관계와 자존감이 흔들린 나머지, ‘내가 기억하고 있는 내용’을 가지고 다툴 필요가 없습니다.
애인과의 언쟁 중 제일 소모적인 것은 ‘네가 그랬잖아!’, ‘네 표정이 그랬잖아!“, ”네가 비꼬는 투로 말했잖아!’ 같은 투의 말입니다. 이때 최대한 빨리 누구든, ‘서로의 기억은 늘 다를 수밖에 없다’ 선언하고 맥을 끊어야 합니다. 평행선을 그으며 미친 듯 달리는 기억이 감정선을 더 날카롭게 건드리기 전에 말입니다. 어차피 해결이 나지 않을 문제인데, 그것을 가지고 계속 다투는 건 헤어지자는 이야기일 뿐입니다. 당신도, 그 사람도, 지금 헤어지려는 것이 아니잖아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하세요. 일이 되게끔 해야 합니다.
자존심 내세우기, 인정받기, 모두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 감정을 존중받을 권위와 위엄을 잃지 않으면서도 타인에게 편안한 문장으로 말하는 과정에서 나 자신에게 안정 애착을 하게 된다면, 다른 것들은 더 이상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편안하게 하세요, 괜찮아요.
♣오늘의 숙제는 이렇습니다.
다시 한 번 이렇게 이야기해볼 것.
“지금의 나는 타인과 안정적인 관계를 맺을만큼
적당히 불완전하고, 적당히 완전하다.
나는 흔들리지 않고 현재의 나와 나의 사람들을 지켜내겠다.
이것은 나의 삶이다.”
나도 아직 나를 모른다(허지원 지음, 홍익출판사, 2018)에서 발췌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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